채용회사가 무슨 브랜딩이야
디자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법한 채용플랫폼이 브랜딩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뭘까. 사실 채용플랫폼이기 때문에 디자인과 브랜딩에 대한 고민을 더욱 많이 하고 있다.


원티드는 유저의 소중한 데이터를 활용해서 기업과 인재를 연결한다. 심지어 추천인과 합격자 모두에게 채용보상금으로 현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고객과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신뢰를 쌓아야한다. 하지만 이미 세상엔 너무나도 다양한 브랜드들이 고객들과 아주 긴밀하고 전략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넘쳐 흐르는 브랜드들, 그 속에서 원티드를 알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
수많은 브랜드들 속에서 우리 브랜드를 고객에게 각인 시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한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무언가가 필요할 때 "아! 이게 있었지!" 하고 생각나게 하는 것. 이직이 필요할 때 "아! 원티드가 있었지!" 하고 앱을 켜게하는 것. "아!"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백 수천만개의 브랜드들이 실패할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떠안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어가며 광고를 하고, 고객들에게 "내가 있다는 걸 꼭 기억해!" "제발 우릴 기억해줘!" 라고 소리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실 '각인시킨다' 라는 표현도 조금 강압적으로 느껴진다. 누군가 내 머리속에 들어와 무언가를 억지로 새겨 넣는 상상을 하면 조금 무섭다. 그렇다고 남들은 다하고 있는데 나만 안할 수는 없는 일.


우리는 브랜드를 사람들의 머리에 우겨넣는 대신, 그들의 입장에서 좀 더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흡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기왕이면 재미있게, 더 자연스러운 언어와 일관된 톤으로 고객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 이것이 원티드의 브랜드 디자이너가 해야할 일이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르고 기능은 데이터에 따른다"





Data-Driven 브랜딩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미국 신건축학의 시조, 루이스 설리반(Louis Sullivan)이 무려 100여 년 전에 했던 말이다.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기능주의 미학은 지금까지도 많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입에 오르내린지도 100여 년이 지났다. 시대가 변한 만큼 루이스 설리반의 미학에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원티드의 Data-Driven 브랜딩은 다음의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형태가 기능을 따른다면, 그 기능은 무엇을 위한 기능이어야 하는가. 더 나아가 그 기능이 왜 필요한가, 누가 필요로 하는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능인가, 문제는 왜 발생했는가.


이 복잡하고 심오한 질문에 대한 답을 데이터에서 찾았다. 문제를 인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능을 만들고, 그 기능을 어떤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도 데이터를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일련의 사고 과정을 통해서 "형태는 기능을 따르고, 기능은 데이터에 따른다." 라는 우리만의 미학이 생겼다. 브랜딩을 보다 효율적으로 유저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무기가 생긴 것이다.









숫자와 감성사이
물론 데이터, 수치, 숫자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숫자에도 허수는 존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측정 불가능한 예술적, 감성적인 영역이 사람들에게 더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브랜딩과 데이터, 겉보기에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로 보인다. 사실 브랜딩은 감성적인 영역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라는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한다면 더욱 견고하고 날이 선 브랜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야가 더욱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다.


원티드의 브랜드 디자이너들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데이터라는 재료의 요리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Data-Driven 브랜딩에 대해서는 할 말이 굉장히 많으니, 이번 글에서는 원티드의 브랜드 디자이너가 어떻게 데이터를 브랜딩의 재료로 활용했는지 중간중간 간략하게 정리해봤다.











우주가 되어라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그리기 위해 가장 먼저 내부의 데이터를 조사했다. 원티드의 경우 전체적인 회원들의 연령대,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와 성별, 직군, 경력 등을 조사했다. 25~34세 즉, 우리가 흔히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르고 있는 연령대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그렇다면 원티드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야했다. 이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소비하며, 무엇에 열광할까. 숲을 넘어 우주가 되어 원티드와 밀레니얼, 그리고 연관된 모든 것들을 바라봤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브랜드, 20대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기업가치가 높은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 등, 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브랜드들과 이와 관련된 데이터를 거시적으로 조사했다. 우주가 되어 지구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를 보았던 것이다. (구글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느꼈다)









잠깐만, LV가 여기서 왜 나와
분야에 상관없이 밀레니얼 세대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은 어떤 시각언어로 그들과 소통하고 있는지 관찰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 뷰티, 아이돌, 뮤직비디오, F&B, IT 등 모든 것들 전부를 관찰하니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볼드함, 화려함, 자유로움 3가지 키워드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볼드함, 화려함, 자유로움 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전세계의 브랜드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이러한 현상은 패션업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채용플랫폼 서비스가 LV를 눈여겨 보기 시작한 이유다.


현재 패션 업계에서는 LVMH, GUCCI, OFF-WHITE, BALENCIAGA, NIKE 등의 브랜드들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 많은 패션 브랜드가 지난 몇년 동안 유지해오던 로고와 디자이너를 바꾸고 있었다. 바꾸는 정도가 아니었다. 갈아엎는 수준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패션시장에서 20~30대의 명품소비가 증가하더니 이젠 그들이 기존 30~50대의 구매력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의 이런 파격적인 행보는 모두 밀레니얼들의 지갑을 털기 위함이 분명해 보였다.


그 중 LVMH의 움직임이 특히 돋보였다. 콧대 높은 정통 명품 기업이 스케이트옷이나 만들던 스트릿 브랜드 "슈프림"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건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더 재밌는건 두 기업은 19년 전 서로 소송까지 했던 앙숙이었다는 것. 그 다음해 2018년에는 스트릿 브랜드 “OFF-WHITE”의 디렉터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를 루이비통 남성복 디렉터로 앉히기까지 했다.


버질 아블로의 작업에는 볼드함, 화려함, 자유로움 이 3가지 키워드이 모두 나타났다. 다른 브랜드들의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에도 같은 키워드가 보였다.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어떤 시각언어에 반응하는지 감이 잡혔다. 이제 원티드만의 맥락과 디자인으로 볼드함, 화려함, 자유로움을 잘 녹여내는 일만 남았다.














볼드하게  화려하게  자유롭게
데이터, 트렌드, 흐름, 시장분석을 통해 키워드들을 얻어냈다면 이제는 키워드를 원티드의 Creative Value와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야했다. 지금까지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분석을 했다면 이제 부터는 감성과 이성을 넘나들면서 유연하게 디자인해야 했다. 너무 과도한 시도와 디자인으로 원티드의 결을 해쳐서도 안되고, 너무 원티드의 고집만 피웠다가는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야한다.


원티드의 심볼에 사용된 컬러를 중심으로 컬러스킴을 재구성해 화려함을 살리고, 짧고 볼드한 메세지로 주목도를 높이고, 역동적인 캘리그래피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자유로운 느낌을 녹여냈다.




지금까지 "형태는 기능을 따르고, 기능은 데이터에 따른다." 라는 로직을 통해, 데이터에 기반한 문제 인식과 분석이 형태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그 형태와 브랜드의 디자인요소가 합쳐져 우리만의 시각언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정리해보았다.


이 방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에 물음표를 던지고 디자이너만의 시각에서 벗어나 더 높은 곳에서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이터, 지표, 숫자가 난무하는 IT업계에서 고생하고 있는 브랜드 디자이너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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